
1948년, 세계 여러 나라는 국제 연합(UN)에 모여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했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여기에는 이 단원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 인권의 뿌리는 바로 인간 존엄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인권의 의미와 근거, 특징, 확장 과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인권 감수성을 길러 볼 것이다.
피부색도, 태어난 나라도, 가진 것도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소중하지 않을까?’ 인권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인류의 오랜 대답이다. — 인권은 과연 보편적 가치일까?
전쟁과 차별의 참혹함을 겪은 뒤, 인류는 다짐했다. “다시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인권(人權)이다. 인권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賞)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권리다.

1948년, 세계 여러 나라는 국제 연합(UN)에 모여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했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여기에는 이 단원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 인권의 뿌리는 바로 인간 존엄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인권의 의미와 근거, 특징, 확장 과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인권 감수성을 길러 볼 것이다.
인간이 값이나 조건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뜻. 능력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도덕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성적이 오르든 떨어지든 나의 소중함은 줄어들지 않는다. 친구를 성적이나 겉모습으로 줄 세워 대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너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이마누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 정초』
엘리너 루스벨트인간 존엄성을 현실에서 지켜 내기 위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기본적 권리. 법이 인권을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닌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뿐이다.
전학 온 친구가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둠에서 늘 밀려난다면, 그 순간 침해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친구의 인권이다.
인종·성별·종교·재산·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인권의 성질. ‘어떤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점에서, 인권은 문화를 넘어선 보편적 가치가 된다.
학급 회의에서 목소리 큰 몇 사람이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은 발언 기회를 주는 것 — 보편성을 교실에서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그 고통에 공감하며 해결에 참여하려는 마음의 힘. 인권을 ‘아는 것’과 ‘지키는 것’ 사이를 잇는 다리와 같다.
장난처럼 오가던 별명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 말은 하지 말자”고 먼저 말하는 순간, 인권 감수성이 작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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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째서 이런 권리를 갖는 것일까? 그 대답의 밑바탕에는 인간 존엄성이 있다.
인권의 근거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데 있다. 존엄하다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존엄한가? 도덕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인간은 이성과 자율성을 지녀 스스로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이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셋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엄성을 현실에서 지켜 내기 위한 권리가 바로 인권이다.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도덕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곧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생각해 판단하고,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한 사람을 험담하는 자리에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정하는 힘 — 그것이 바로 자율성이다.
사람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목적이라는 뜻. 물건에는 값이 있지만 사람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엄성이 있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모둠 과제에서 잘하는 친구를 ‘점수를 올려 줄 사람’으로만 여긴다면, 그 친구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셈이 된다.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하거나 값을 매겨 바꿀 수 없는, 단 하나뿐인 것이다. 그래서 생명은 어떤 이유로도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며, 이것이 인권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근거이다.
위험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힘을 모으는 까닭은, 생명이 이익이나 편리함과 견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국가나 법이 정해 줘야 비로소 생기는 것 아닌가?”
인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천부적 권리이다. 법과 제도는 인권을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닌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뿐이다. 그래서 법에 미처 담기지 못한 권리도, 인간 존엄성에 비추어 인권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인권을 인권답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바로 천부성 · 보편성 · 불가침성 · 항구성이다. 이 네 가지는 인권이 왜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권리인지를 설명해 준다. 아래 카드를 하나씩 눌러 살펴보자.
‘태어나면서 갖는다’부터 ‘영원히 보장된다’까지. 카드를 눌러 각 특징의 뜻을 확인해 보세요.

이 네 가지 특징을 국제 사회의 이름으로 공식 선언한 것이 바로 세계 인권 선언(1948)이다. 비록 법처럼 강제하는 힘은 크지 않지만, 세계 인권 선언은 이후 여러 나라의 헌법과 국제 인권 규약의 바탕이 되어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 아래에서 주요 조항을 살펴보자.
조항 카드를 눌러, 각 조항이 담고 있는 인권의 뜻을 확인해 보세요.
인권의 목록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넓어져 왔다. 프랑스의 법학자 카렐 바작은 이 확장의 흐름을 세 세대로 정리했다.

1세대 인권(자유권)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한다. 신체의 자유, 양심과 표현의 자유, 정치에 참여할 권리처럼, 국가가 개인을 함부로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권리이다. 2세대 인권(사회권·평등권)은 “국가에 의한 보장”을 요구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교육·노동·사회 보장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마련해 달라는 권리이다. 3세대 인권(연대권)은 한 개인을 넘어 “함께 누리는 권리”이다. 평화·환경·발전처럼 여러 사람과 국가가 연대해야 실현되는 권리이다. 아래에서 여러 권리가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직접 분류해 보자.
각 권리가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1세대 / 2세대 / 3세대 중 하나를 눌러 골라 보세요. 바로 채점과 설명이 나옵니다.
인권은 지금도 넓어지고 있다. 사회가 변하면서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인권이 계속 등장한다. 인터넷 시대에는 나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지워 달라고 요구하는 잊힐 권리가 생겨났고, 기후 위기 앞에서는 환경권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렇게 인권의 목록은 인간 존엄성을 더 온전히 지키는 방향으로 자라난다.
인터넷에 남은 나에 관한 정보를 삭제하거나 검색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 정보화 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인권이다.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 나뿐 아니라 미래 세대와 온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3세대 인권으로 강조되고 있다.
세계에는 저마다 다른 문화와 전통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그건 우리 문화이니 외부에서 인권을 들이대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권은 문화마다 다른 것일까, 아니면 문화를 넘어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인권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인권 침해가 일어난다.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민감하게 알아채고 공감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다.
인권 침해는 멀리 있지 않다. 겉모습이나 출신을 이유로 한 차별, 아동에게 지나친 노동을 시키는 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기회를 빼앗는 일, 외국인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일 — 모두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인권 침해이다. 이러한 침해의 원인은 흔히 편견과 고정 관념, 무관심, 잘못된 제도에 있다. 그렇다면 해결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으며, 인권을 지키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기회를 빼앗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인간 존엄성과 평등권을 훼손하는 인권 침해입니다. 능력과 무관한 특징으로 사람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의 안전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모든 학생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합리적인 규칙입니다. 특정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존엄성을 해치지 않으므로 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인권 감수성은 정당한 규칙과 부당한 억압을 구별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출신을 이유로 한 임금 차별과, 이동의 자유를 빼앗는 여권 압류는 노동 인권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인권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보편성을 떠올려 봅시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를 바로잡아 달라는 요청은 사생활과 잊힐 권리와 이어집니다. 정보화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는 인권으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례를 판단해 보며 느꼈겠지만, 인권 감수성은 “이건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기던 일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제 나의 눈으로 나의 일상을 돌아볼 차례이다.
정답을 맞히는 활동이 아닙니다. 인권의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에요. 편하게 적어 보세요. (입력한 내용은 저장되지 않으며 나만 봅니다.)
배운 내용을 스스로 점검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바로 채점되고 해설이 펼쳐진다.